곤을동은 화북천이 바다를 향해 흐르다 별도봉 동쪽에서 두 갈래로 나뉘는 곳에
하천 안쪽에 있던 안곤을, 하천과 하천 사이에 있던 가운데곤을, 그리고 밧곤을 등으로 이루어진 마을이었다.
밧곤을과 가운데곤을 주민들은 ‘덕수물’ 이란 용천수를,
안곤을 주민들은 ‘안드렁물’이란 용천수를 식수로 사용하였으며,
작지만 마을 공회당도 있었고 안곤을과 가운데곤을에는 말방앗간도 있던 전형적인 자연마을이었다.
제주 해안 마을의 주요 생활 형태인 반농반어로 생계를 꾸리던 이곳 주민들은
1949년 1월 4일 불시에 들이닥친 토벌대에 의해 가옥이 전소되고 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하는 비극을 겪었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4.3에 사라진 마을 중 안곤을의 집터들
안곤을 주민들이 이용하던 안드렁물
제주의 4.3은 근현대사에서 가장 참혹한 역사였다.
반란군과 진압군들 사이에 희생된 인원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수 만 명(200.6 현재 신고자 14,000여 명, 군경 320 명)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물적 피해는 집계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광주항쟁이나 부마사태 등은 희생자가 얼마되지 않지만 국가에서 다양한 시혜를 주는데
제주의 4.3은 아직도 이념 논쟁과 더블어 진상규명도 명확하게 되지 못하고 있으며
군경 희생자와 우익단체 희생자는 국가유공자로 혜택을 받고 있지만 민간인 희생자는 상응하는 보상이나 혜택이 없다.
사라진 마을이 수십 개소이며 수만 명이 사망하고 부상당한 비극이 이렇게 홀대를 당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후대에게 바른 역사를 가르쳐야함은 중대한 국가의 책무인데
하루빨리 이런 사항이 바로 잡히기를 기원해본다.